“일은 저와 가족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원동력이자 저의 자부심입니다. 일을 하며 저도 성장했고, 아이들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가족이 각자의 일을 하지만, 함께 소통하며 즐겁고 조화롭게 서로의 일상에 스며들 수 있었죠. 일이 끝나면 온전히 가정과 제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해준 사내문화도 제가 일과 가정 모두를 잘 지켜낼 수 있었던 비법입니다.”
Q1.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 1월에 입사해 현재 22년 차 제약 세일즈 업무를 맡고 있는 이혜령이라고 합니다. 현재 부산에 살고 있고, 고1인 딸 아이와 중1인 남자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입니다. 오가논 제품의 가치를 전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Q2. 올해 초 글로벌 신뢰경영 평가 기관인 GPTW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대한민국 자랑스런 워킹맘’ 수상자로 선정되셨는데 다시한번 축하 드립니다. 소감과 더불어 어떤 점이 수상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회사를 오래 다니니 이런 상도 받는군요(웃음). 저 아니어도 뛰어난 선후배 분들이 많은데 왜 저일까를 생각해보니 자랑스러운 워킹맘이려면 ‘엄마’여야 할 텐데, 직무를 20년 이상 이어온 여성 직원이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또 제가 평소 달리기나 그림 그리기, 독서 같은 취미를 좋아해서 업무가 끝나면 자기 개발에 시간을 쓰는데, 이러한 모습들을 좋게 봐주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일을 병행하고 있지만, 저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봤을 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고 봐주시는 것 같고,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크게 스트레스는 받지 않는 것 같아요. 보통 영업이라고 하면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한다 거나 늦은 시간까지 업무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희 회사는 가급적 모두들 시간 내에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거든요. 업무가 시작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열심히 업무에 집중하고, 일이 끝나면 가정과 제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쓰려고 하죠. 이러한 사내 문화가 제가 일과 가정을 오랜 시간동안 잘 지켜낼 수 있었던 비법인 것 같아요.
Q3. 이번 수상도 그렇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일을 하는 모습이 멋지고 자랑스럽게 보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집에서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은데, 이럴 때 엄마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나요? 혜령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제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회사에 안 가고 집에 있으면 좋겠어?’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당시 아이들은 엄마가 집에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했는데, 남편이 ‘엄마가 에너지가 엄청 많은 사람인데, 그걸 너희에게 모두 쏟으면 과연 좋을까?’ 라고 되물었죠. 그러니까 아이들도 엄마가 일을 하는 게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나 봐요(웃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렇게 저희 가족은 모든 것을 유머러스하게 풀어 넘겨왔던 것 같네요.
물론 저도 일을 그만 둬야 되나 싶을 때가 있었죠. 바로 아이가 아팠을 때예요. 둘째가 아토피가 심해 잠을 뒤척이는데 저도 잠을 함께 잘 못 자는 바람에 근무 중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이건 아이 키우는 엄마들의 공통된 고민인 것 같네요. 문제는, 이러니까 아이든 일이든 어느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인 거예요. 일을 할 거면 제대로하고, 그만둘 거면 제대로 그만 두자라는 생각이었죠.
그럼에도 제가 일을 계속 해 나가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 때문이에요. 영업이란 직무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데요, 제가 이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 아니면 누가 이렇게 열심히 하겠어. 나는 우리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만 생각하는 그런 자부심이 있어요(웃음). 그리고 제 팀원들이 좋기도 하고, 어떤 일을 잘 해냈을 때 성취감과 즐거움이 드는 기분도 꽤 중독성 있거든요.
또 다른 이유는 일이 제 자신을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40살이 넘어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를 수 있잖아요. 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환경에 노출해보고 직면해 보는 것이겠죠. 회사 생활을 하면 여러가지 상황들에 놓이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와 가까워지고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건전하고 건강하게 적극적으로 여러 활동에 참여해서 스스로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삶을 사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봅니다.
Q4. 앞서 말씀 주신 것처럼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워킹맘의 역할이 쉽지만은 않을 듯한데, 바쁘신 일상에서도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혜령님의 비법을 공유해 주신다면요.
하루는 저희 아들이 학원 숙제를 안 하고 있어서 제가 잔소리를 한 적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 아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우리집 모토는 각자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한다 아니었어?’라는 거예요(웃음). 놔두면 알아서 스스로 할 거니 걱정 말라는 얘기겠죠. 저희 가족은 주말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인데요, 남편은 업 특성상 출근을 하고, 고등학생인 큰 딸은 학원에 가고요, 아들은 센터에서 공부를 하는데 그 시간에 저는 등산을 하죠. 서로의 간섭이 없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본인의 일을 하며 조화롭게 잘 지내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다른 자리에 있긴 하지만 교류는 활발합니다. 가족 단톡 방에서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인증사진을 공유하기도 하고요. 식사도 가족과 일주일에 한끼는 꼭 함께하는 것 같아요. 여기서 포인트는 함께 다같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시간을 정해놓거나 제한하지 않는 거예요. 서로가 함께 조화롭게 스며들 수 있도록 한 거죠.
한 예로, 저희 아들이 수학을 좋아하고 또 잘하기도 해서 매주 주말 센터에 공부를 하러 가거든요. 제가 아이를 데려다 주는데, 겉으로는 제가 아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죠. 근데 저는 그 시간에 센터 근처에 있는 산을 등산하거든요. 저는 저를 위한 운동에 시간을 쓰고, 매주 등산을 하며 기분도 환기하죠.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고생한다거나 희생한다는 말은 절대하지 않아요. 오히려 덕분에 등산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죠. 이러한 조화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저만의 비법인 것 같아요.
Q5. 이상적인 일과 가정의 양립은 비단 혜령님만 노력하시는 게 아니라 남편, 아이들도 함께 이해하며 도와야 할 것 같습니다. 혜령님은 언제 가족이 가장 든든하고 감사함을 느끼시나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가족들이 불평이나 불만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고마운 것 같아요. 최근에는 일본 삿포로로 가족여행을 갔는데, 모든 도시를 다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4박 5일동안 도시를 매번 바꿨거든요. 이동시간도 길고 기차에서 피곤했을 텐데 아이들이 불만 한번 토로하지 않더라고요. 힘들었지만, 모든 순간이 재밌었어요. 이 여행처럼 저도 일을 하면서 성장했고, 아이들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함께 여서 좋고, 함께 영리하게 방법을 찾아 나가며 과정을 즐길 때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가족들에게 고마운 만큼, 저도 노력하는 것이 있습니다. 집에 가면 의식적으로라도 아이들에게 그늘진 모습을 보이거나 우울한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 거예요. 대신 아이들에게 객관적으로 고민을 물어볼 때도 있어요. ‘내가 지금 이런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너희는 어떻게 할 것 같아?’와 같은 질문으로요. 그러다 보니 제 고민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는데, 이게 매일 하는 공부나 집안일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새로운 주제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더 확장된 범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러면서 관계도 더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제가 생각하지 못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아서 제가 놀랄 때도 있고, 제가 되려 아이들에게 배울 때도 있죠. 이렇게 함께 웃을 일이 있다는 게 굉장히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일이 안될 때 안 좋은 감정에 빠질 수 있는데 아이들을 봐서라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돼서 저 스스로도 감정을 안정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Q6. 요즘 적지 않은 청년들, 특히 여성들이 커리어 단절을 우려해 임신과 출산을 하지않고 있고, 이는 저출생이라는 사회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도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이루게 하려면 어떤 부분이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운이 정말 좋았던 게 저희 아이들을 국공립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던 것인데요,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이라 안심하고 보낼 수 있었고 제가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겼죠. 요즘 맞벌이 부부가 많은데 이렇게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유치원이나 시설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를 돌봐 줄 도우미를 구하고, 또 아이를 맡길 적당한 곳을 찾아야 하는 불안감,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를 낳기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여기에 더해 가족과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기업문화도 중요합니다. 저희 회사는 시간 사용도 매우 유동적이고 직원들을 배려하는 편인 것 같아요. 얼마 전 저도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첫 시험 날이어서 저녁 7시에 회식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보겠다고 당당히 말했거든요. 이렇게 눈치보지 않는 환경이 될 수 있다면 많은 분들이 아이를 낳아도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까지도 빠질 수 없는 회식이나 불필요한 야근을 많이 하는 곳도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전보다는 많이 개선된 편이겠지만 가족을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Q7. 혜령님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씀도 해주세요.
제가 지금 10년 일기라는 것을 쓰고 있습니다. 10년 뒤의 내 모습이 궁금해서 지금 현재의 생각과 모습을 간단히 남기는 형식인데요, 10년 후에 ‘내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를 계속 꿈꾸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생각지도 못한 즐거운 사람이 돼있는 것. 이제 저의 목표예요. 매니저가 되고 싶다, 본부장이 되고 싶다 이러한 단편적인 직함으로 정의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봤을 때 ‘나 회사 생활 열심히 즐겁게 참 잘했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요. 제 후배들도 고민이 있을 때 스스럼없이 저에게 얘기를 토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